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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도 동양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6세기경 리디아(LYDIA)에서 최초의 주화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귀금속의 소재가치에서 교환의 매개기능을 발견하였으므로 金, 銀과 금과 은의 합금인 일렉트럼(ELECTRUM) 등을 소재로 하여 일정무게를 달아 인물 초상이 음각된 타인기를 대고 망치로 때려서 만들었습니다.
많은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에서는 신(神), 인물, 전설의 동물들을 도안으로 해 '곡식 한줌의 무게'라는 뜻의 드라크마(DRACHMA)라는 액면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아테네의 '테트라 드라크마' 은화인데 고대 아테네의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와 아테네의 신(神)이 도안으로 사용되어 지금도 세계적인 명품화폐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화폐제도를 그대로 답습해오던 로마는 서기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화폐제도를 확립한 이후 황제마다 자신의 초상을 주화에 넣는 특유의 화폐문화를 이루었습니다.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서기395년 동서로 나누어 지면서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빛나던 문화 또한 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쇠잔의 징후는 만들어 사용하던 화폐에도 역력하여 주화의 무게는 줄어들고 귀금속의 순도는 낮아졌으며 조각을 무색케하던 입체식 부조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선으로 표현된 평면적 도안에 단순한 구조로 변모되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비잔틴 제국으로 존속하던 동로마권에서나 고대 영국, 고대 프랑스 등 여러 개의 황국으로 나뉜 서유럽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공통된 특징은 딩시 대단했던 종교에 대한 열기를 반영하듯 예수와 십자가가 도안의 주제로 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15세기 중엽부터 포루투갈, 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이 아프리카 신대륙의 금광지역을 손에 넣어 금.은을 확보하게 되는 한편 제련술의 발달로 은의 생산량이 급증하게 되자 유럽의 귀금속 기근은 끝나고 대형 금.은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때마침 꽃을 피우기 시작한 르네상스의 예술발달과 연결되어 주화의 외양과 크기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5세기 말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대형 은화는 1519년 보헤미아에서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탈러화를 기점으로 탈러화라는 정형을 확립하였습니다. 탈러화는 유럽 각국에 영향을 주어 영국에는 크라운화, 러시아에는 루블화, 프랑스에는 에퀴화 등 비슷한 유형의 대형은화가 출현하여 유럽 화폐체계가 통일성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는 후에 금본위제도의 성립과 국제 교역 발전의 근간이 됩니다.

 

18세기 말엽부터 서양의 화폐 및 화폐제도는 중대한 변화를 겪으며 근대화폐시대를 엽니다. 변화는 두가지 면에서 일어나는데 그 하나는 제도적 측면에서 십진법과 금, 은 복본위 제도의 탄생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의 부산물인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계를 이용한 주화제조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기술사의 변화였습니다.
대혁명 직후 프랑스에서는 십진법에 의한 화폐제도를 채택하였으며 1803년에는 금.은의 교환 비율을 2:31로 법으로 정한 금.은 복본위 제도가 나폴레옹 정부에 의해 확립되었는데 이는 1차대전때까지 세계 열강국들이 채택한 화폐제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엔진의 힘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화폐의 외양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는 이제까지 불가능했던 섬세하고 복잡한 도안을 주화에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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