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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환의 화폐 이야기 (78) 주화의 탄생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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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순환의 화/폐/이/야/기 [78]

주화의 탄생

 

지난 3월 중순엔 알파고(AlphaGo)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구글의 자회사인 딥 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인류의 자존심을 놓고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친 것이다. 비록 5번기의 게임에서 알파고가 승리를 가져가긴 했지만 인류를 한마음으로 묶어 일희일비하게 만든 대결에서 단 1승만으로 이세돌은 인간의 저력과 위대함을 감동적으로 증명했다. 연이은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패배를 통해 배우면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의 승리’였다. 그 불굴의 도전 정신은 인류의 소중한 덕목이고 오늘날 알파고를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한 소중한 덕목과 불굴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화의 탄생에도 있었다.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 창립이후 동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연유로 우리나라 주화는 10여년이 지난 1959년에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1910년 이래 50년만의 일 이었다. 10환(적동화), 50환(백동화), 100환(백동화)가 그것이다. 이 3종 주화는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청에서 제조되어 수입한 것이다. 10환 1억장, 50환 4천 5백만 장, 100환 5천만 장으로 총 139만여 달러를 지불하고 수입되었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100환화의 제조비용은 약 50만 달러였다 한다.

그러나 이 ‘환’ 표시 주화는 1962년 6월 10일 제 3차 화폐개혁으로 약 4년여 만에 유통 정지되고 말았다.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100환짜리는 이승만 대통령 초상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10환 50환은 1968년까지 1원, 5원으로 사용되었다. 화폐개혁이 되면서 ‘환’ 대신 ‘원’ 표시로 10대 1로 절하되어 유통 된 것이다. 1원, 5원으로
통용되던 10환 50환은 1975년 3월 22일까지 약 7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다 폐기되고 말았다.

1964년, 한국은행은 유통 화폐의 단위와 명칭을 통일 시키고 1원화의 수요증가에 대비 1원 화의 발행이 불가피 했다. 한국은행은 다시 수입하는 것보다 자국에 주화 제조시설을 갖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당시 1억원을 투자해 조페공사에 설비자금을 지원하고 주화공장을 건설하게 하였다.

마침내 1966년 8월 16일, 부산 동래에 위치한 한국조폐공사 주화공장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된 가1원, 가5원, 가10원 주화 제조를 시작 하였다. 이때 사용된 압인기는 쌍구 압인기(영국의 테일러 챌런사) 2대, 단구 압인기(호던 메이슨 에드워드사) 2대 그리고 부속 시설 1식으로 23만 달러에 들여왔다. 주화 제조에 핵심인 극인(Working Die)과 칼라(Collar) 또한 영국 존 핀치스사로 부터 공급을 받았다.
이때 발행된 주화는 1945년 해방 이후 21년 만에 한국조폐공사에서 최초로 자체 제조된 것으로 우리 화폐사에 기록될 만한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다. 그해 12월 30일은 주화공장이 정식 발족했다. 일제에 의해 전환국이 폐쇄 된지 60여년 만이다.

1968년에는 기 발행된 주화의 소재를 변경했다. 동의 가격상승이 원인이었다.
특히 1원화의 제조 원가는 액면 가치를 넘어갔고 회수 또한 되지 않아 제조비가 증가했다. 그런 연유로 그해 8월 26일을 기해 가격이 제일 저렴한 알루미늄으로 교체하여 발행되었다.

1970년 7월 16일, 5원. 10원화도 소재를 변경(동,65%.아연 35%)하여 재발행 되었다. 이때 등장한 주화가 나1원, 5원, 10원이다. 뿐만 아니라 가100원화가 백동화로 제조되어 7년 만에 새롭게 등장 했다. 이 가100원화는 이승만 대통령 대신 이순신 장군으로 표면을 앉혔고 이면에는 액면가에 당초문양을 삽입한 것으로 100원 은행권과 병용되었다. 당시 최고액권은 500원권이었다.
원극인(Master Die)은 일본 오사카 조폐국에서 수입되었다. 특이한 것은 주화 가장 자리에 톱니바퀴처럼 생긴 밀(Mill)이 들어가 있다. 수입된 원극인을 가지고 극인(Working Die)은 조폐공사에서 제조했다.

주화 자재(백동 판)는 풍산금속에서, 소전(素錢)은 일성공업에서 공급받았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 세계 조폐국에 소전공급을 하고 있는 풍산금속과 한국조폐공사의 인연은 어언 50여년이 되어간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속에 풍산금속의 창업자께서 “조폐공사와의 인연을 저버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유언처럼 하셨다는 말이 주화공장의 원로 선배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1972년, 한국은행은 주화의 화종체계를 정립하고자 12월 1일 가50원 주화를 화폐역사상 처음으로 발행하였다. 원극인은 역시 오사카 조폐국에 의뢰 했다. 화폐정화와 화폐취급업무의 기계화를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제작된 가50원 주화의 디자인은 표면에 벼 이삭을, 이면에는 액면가를 넣어 간결하다. 농업 증진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디자인 됐지만 유엔 농업기구인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가 세계 각국에 농산물을 주제로 한 유통주화를 발행 해 줄 것을 건의한 것에 대한 호응이기도 하다. 이름 하여 FAO 코인이 이것이다.

이 50원 주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화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당시 조폐공사 도안실의 강박 실장의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표면의 벼 이삭 디자인도 아름답지만 벼 알갱이가 29개로 일본의 5엔 주화의 27개와
차별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역시 여기에도 가장자리에 톱니바퀴가 들어가 있는데 그 숫자가 109개로 100원짜리 110개와 차별화 시켰다.

1982년에 접어들면서 500원 동전이 출현했다.
화폐권종의 고액화에 따른 방편으로 고액 주화를 발행하여 제조비 절감과 자동판매기 보급에 따른 거래 편의를 위해 6월 12일 500원 주화를 발행하여 500원 지폐를 대체한 것이다. 명목상 “화폐체계정비‘ 라는 차원에서 신체계주화라는 이름으로 그때까지 사용되었던 주화의 다자인을 조금씩 변화시켜 다1, 다5, 다10, 나50, 나100원화를 발행하면서 500원을 발행하여 오늘날의 주화 체계를 정립한 것이다.

학을 주 소재로 디자인 한 이 500원 주화는 순수한 메이드 인 코리아다.
디자인에서부터 원극인 제조까지 최초로 조폐공사의 기술로 제조된 화폐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만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17종의 유통 주화를 발행하였다. 이 가운데 14종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원’ 표시 주화이고, 나머지 3종은‘환’ 표시 주화로 외국에서 제조 수입된 것으로 유통 정지되었다.

1982년 전까지 주화의 원극인은 모두 수입하여 돈을 찍었지만 그 이후 발행된 모든 주화는 순수 우리 기술로 조폐공사에 의해 자체 제조 생산된 주화이다. 조폐공사 창립 이래 30년 만의 일이지만 <기술보국>이란 불굴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주화의 탄생은 그렇게 이루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