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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019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 기념’ 1kg 금화 [예약상품]
국명 : GREAT BRITAIN
상품번호 : 100087801
액면/연도 : 1000POUND / 2019년
품위/중량/크기 : 金 99.9% / 1005g / 100mm
상태 : PRF
판매가격 : 93,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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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조폐국]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 기념주화 스페셜

시대의 탄생 - 영국의 혁신과 진보,
새 시대의 탄생을 알린 빅토리아 여왕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끌다

빅토리아 여왕(1819~1901) 탄생 200 주년을 맞이하여 영국 왕립조폐국은 빅토리아 시대의 놀라운 통치 유산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지닌 시대를 통해 영국의 진보를 축하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보낸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군주 가운데 최대의 재임기간을 기록하기 이전 빅토리아 여왕의 최장의 재임기간, 격변하는 시대 진보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화와 제국의 확장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시기였으며 이러한 확장을 통해 중산층이 성장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빅토리아 시대 빅토리아 주의자들은 ‘재미의 창시자’라고도 일컬어졌습니다. 취향이 꽤 까다롭다는 평판이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많은 것들, 사이클링과 초콜릿, 젤리와 아이스크림, 부활절 달걀 같은 것들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빅토리아 시대는 흥미진진한 변화와 기술 발전의 시대였고 영국에서 급속하고 극적인 확장과 발전의 시기였습니다. 영국의 영향력은 엄청 났고 광대한 지역의 무역은 새로운 의사소통과 여행 방법을 요구했습니다. 증기선, 장거리 기차 여행, 대서양 횡단 전신기 및 심지어 첫 번째 전화조차도 그녀 시대의 주요한 발명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1897년 6월 22일 78세의 나이로 즉위 60주년을 맞이하고 이후 1901년 1월 22일 만 81세의 나이로 병사할 때까지 64년간 재임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크리미아 전쟁과 아편전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세포이항쟁도 무난히 진압했으며, 산업혁명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참정권 확대와 국민교육의 보급 등 영국을 최고 번영기로 이끌었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의 역사가들은 그녀의 통치 기간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왕은 1819년 5월 24일 조지 3세의 넷째 아들인 켄트공 에드워드 왕자와 독일 하노버 왕가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왕위와 거리가 멀었으나 왕위계승자들이 모두 일찍 사망하여 공식적으로 다섯 번째 왕위 계승 서열에 있던 그녀가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왕위에 오른 3년 뒤인 1840년, 외사촌인 색스 코버그 고터 가의 앨버트 공과 결혼하였고 두 사람은 진정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독일 출신인 앨버트 공은 처음에는 영국 사회에서 다소 소외되었지만, 고결한 인품과 풍부한 교양으로 여왕을 사로잡았으며 두 사람은 9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앨버트 공이 1861년 장티푸스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였고, 여왕의 상심은 매우 컸습니다. 앨버트 공의 사망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평생 검은 옷을 입고 지내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런던에도 거의 들리지 않고 윈저궁에 칩거하며 실질적으로는 정무에서 손을 땐 채 생활했습니다. 앨버트 공은 이렇게 빅토리아 여왕의 애도 속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오늘날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실은 모두 그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여왕은 정치적으로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재임 기간 중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지만, 각료들의 뛰어난 능력과 충성심이 그녀의 치세를 영광스럽게 만들어나갔습니다. 특히 명수상들로 평가받는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톤은 각각 보수당과 자유당의 대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양당 체제의 의회 민주주의를 확립해가며 영국을 정치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가운데 디즈레일리는 영국의 식민지 확대에 정책의 중점을 두고, 1876년 5월 1일 빅토리아 여왕에게 ‘인도의 여황제’라는 공식 직함을 헌정하면서 대영제국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드높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제임 기간 내내 기본적으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랐으나 윈저궁으로 물러앉아 있으면서도 중요한 국가 사안의 최종 결정권만은 끝까지 손에 쥐고 국정을 큰 틀에서 조율해나갔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그녀를 신뢰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으며 일반 대중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바탕도 되었습니다.
여왕의 만년은 행복했습니다. 1887년에는 즉위 50주년 행사인 골든 주빌리를, 1897년에는 영국 역사상 최초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성대히 치렀습니다. 보어 전쟁이 한창이던 1901년 1월 22일 빅토리아 여왕은 64년간의 치세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 기념 1kg 금화

21년간 행복하고 사이좋은 부부로 살아온 젊은 시절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옆면 초상을 담은 1kg 프루프 금화입니다. 전 세계에 단 12매만 발행되는 귀한 품목입니다.

발행수량: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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