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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최고가의 금화 - 1344 더블플로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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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4396 등록일2006-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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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9일 런던의 유명 옥션하우스 스핑크에서 개최된 경매에서 에드워드3세(1341-1343)의 더블 레퍼드(Double Leopard 또는 Double Florin) 금화가 영국 화폐사상 최고가인 460,000파운드(낙찰수수료 포함, 한화 약 8억2천만원)에 낙찰되어 수집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예상가인 100,000~150,000파운드를 3배 가까이 넘긴 이 낙찰가로 인해 공식적으로 판매된 영국 화폐 중 가장 값비싼 주화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남아 있지만 초기 화폐연구가들은 더블 플로린 금화의 존재를 거의 믿지 않았었는데, 1857년 타인 강가에서 두 소년에 의해 2개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이 중 상태가 좋은 것은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었고 나머지 하나도 몇 수집가를 거쳐 결국 경매에서 판매되어 박물관으로 오게 됩니다. 이번에 경매된 금화는 개인 수집가의 손에 있는 유일한 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블 플로린 금화는 영국 최초의 대형 금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전 수세기 동안 영국에는 페니 은화만이 통용되었습니다. 플로린을 통용시키려 한 이유는 첫째, 왕이 플로렌스의 플로린 금화처럼 유럽 대륙의 상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금화를 만들고 싶어 했고 둘째, 이웃 국가처럼 영국도 금,은의 2금속 화폐체계를 도입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1343년 12월 에드워드3세는 플로렌스의 두 장인(Mintmaster)과 계약을 맺고 더블플로린, 플로린, 하프플로린 3액면의 금화를 발행할 것을 1344년1월27일 공표합니다. 당시 기록으로 보면 액면당 120,000장의 주화를 제조할 만한 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금화가 왜 그토록 희소해졌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플로린 금화는 실패한 화폐였습니다. 두가지 이유로는, (1)플로린 금화와 페니 은화의 상대적인 가치 차이가 지나치게 커졌고 (2) 처음 시도되는 영국의 지나치게 높은 가치의 금화를 해외 상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금화 제조는 1344년8월 모두 중지되고 대부분의 금화들이 다시 금으로 용해되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실패였을지 모르나, 예술적으로 플로린의 가치는 빛을 발합니다. 앞면에는 칼과 지팡이를 든 에드워드 3세가 왕좌에 앉은 모습이 표범의 머리로 장식된 왕관에 둘러싸인 모습이, 뒷면에는 꽃장식된 십자가와 사자무늬 장식된 클로버 잎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 도안은 프랑스의 필립4세의 대형금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3종의 주화가 모두 조금씩 도안이 틀리므로 엄밀하게 따지면 3번째 금화는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화의 뒷면 명문(Legend)도 흥미롭습니다. 라틴어 IHC TRANSIENS PER MEDIUM ILLORUM IBAT는 해석하면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 자기만의 길을 걸으셨다”인데 이는 성경 누가복음 4장30절의 내용으로 예수가 성난 군중들 사이에서 어떻게 다치지 않고 걸어갔는가를 묘사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것은, 1340년 프랑스와의 슬러이 해전에서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군함들 사이로 무사하게 빠져나간 것에 대한 비유라는 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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